거절
우리는 거절을 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는 질문들을 하는데 그건 거절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절도 여러 가지의 방식이 있지만 오늘은 NVC(Nonviolent Communication)라는 비폭력대화에서는 거절을 어떻게 하는지 그 단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거절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항상 하고 있는 대화 속에서 종종 발생하게 되는데 대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대화를 왜 하고 있을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마주 대하고 서로 이야기함”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화를 하자고 해놓고 대놓고 화내고 소통을 하자고 하면서 보통은 소리 지르면 통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NVC란 마셜 로젠버그 씨가 만든 대화의 방법인데 그가 말한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방과의 ‘연결’입니다. 일단, 먼저 거절도 큰 범위에서 대화의 한 일부분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거절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과 이 다음에 대화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종종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거절이 어려울까요?
거절 즉, NO를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우리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관계가 깨질까 봐', '상대방에게 호의적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등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옛날에 인디언 추장이 길을 가다가 잠시 말을 멈추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뭘 기다리냐고 물어봤는데 그 대답은 "내 몸은 여기에 왔으나 내 영혼도 함께 왔는지 기다리는 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화도 마찬가지로 대화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는지 먼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의 패턴
생각의 패턴은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말하기와 듣기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로 대화에서 '말하기'와 '듣기'를 사용하는데 NVC에서는 앞에 단어가 하나 더 붙습니다. 바로 그것은 '솔직하게 말하기'와 '공감으로 듣기'입니다. 딸로부터 “아빠는 나와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하는 딸의 느낌은 아마도 좌절스럽고 답답하고 서운하며 민망스러움일 것입니다. 반면, 아빠의 느낌은 어떨까요? 피곤하고 실망스러우며 갑갑하고 짜증이 나기도 할 것입니다. 이런 느낌들은 각 개인이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표현하고자 하는 신호입니다. 이런 신호는 아주 반갑게 받아들이며 그럴 때마다 욕구를 찾는 훈련을 통해 나의 진짜 신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신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신호인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우리가 이런 욕구를 찾는 것을 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거의 없는 이유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무엇을 이루기 위해, 과거에 어떤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더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들 뒤에 우리의 욕구를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서랍 속에 먼지가 쌓여서 쓰지 않는 물건과도 같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찾지도 못하는 곳에 두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 욕구를 찾아서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앞에 말했던 솔직하게 말하기 와 공감으로 듣기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NVC에서는 '관찰 - 느낌 - 욕구 - 부탁'의 순서로 말하라고 합니다.
아주 간단하고 이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하나의 ‘기법’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이러한 도구를 잘 사용하면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생각에서 나오므로 이 NVC를 하기 시작하면 생각의 패턴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생각 패턴을 이해한다는 말이 상당히 생소합니다. 생각의 패턴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가 '생각'을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생각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게 되고 그러한 생각은 의식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NVC를 깊이 이해하고 삶에 적용을 하며 실습을 하면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NVC의 순서
첫 번째, '관찰'은 대화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의 느낌을 자극하고 있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단계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배제하고 사진에 찍힌 장면을 설명하듯 ‘무슨 일인가’하고 쳐다보는 일입니다. 따뜻한 호기심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관찰에는 상대의 비난이나 잘못을 들춰내는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을 때는 이러한 관찰이 어렵습니다. 보통 우리는 "네가 거짓말을 했다"라는 말을 하는데 여기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뉘앙스의 평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5시까지 오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5시 30분이야"라는 말을 나에게 했을 때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관찰이 됩니다. "넌 너무 공격적이야"라는 말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뭐 그렇게 공격적인데?"라고 반박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이러한 반박을 할 수 있는 말들은 모두 평가라고 보면 됩니다.
두 번째는, '느낌'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말하는데 앞서 '관찰 vs 평가'처럼 우리는 이 느낌을 종종 생각과 구분 짓지 못하고 사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무시당한 느낌이다.”, “이용당한 느낌이다”, “배반당한 느낌이다”같은 말들은 말들은 순수한 차원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상대의 행동을 자신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말을 들은 상대방은 그 말을 비난으로 듣고 자기를 변호하거나 우리를 공격하려고 곧바로 시도할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무시당한 느낌이었다”라고 했을 때 상대방은 “내가 무시한 게 아니라” (변호)라든지, “내가 언제 널 무시했냐?(공격)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때 순수한 느낌은 '섭섭했다', '불편했다', '외로웠다'와 같은 것이 됩니다.
세 번째, '욕구'입니다.
‘욕구’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감추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 욕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Need 즉,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충족된다면 너무나도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고 자신이 그리워하고 있는 상태라고 하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욕구는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욕구를 만나려고 하는 시도와 노력이 있어야 만날 수 있기도 합니다. "너 때문에 기분을 다 망쳤어"가 아니라 그 대화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셜 로젠버그는 상대방에 대한 분노는 충족되지 않은 자기 욕구의 비극적인 표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이 이렇게 가버리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대화는 엉뚱하게 결론납니다. 왜냐하면, 서로 간의 잘못을 따지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는 데 온 에너지를 다 사용합니다. 욕구를 발견하고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에너지를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합니다.
이제, 부탁입니다.
자신의 욕구를 의식한 다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욕구를 아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제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부탁은 연결 부탁과 행동 부탁으로 나눕니다. 연결 부탁은 우리가 계속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하면서 물어보는 과정입니다. " 내가 한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와 같이 물어보는 것이고 행동 부탁은 좀 더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을 의문문으로 시도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서로 인사를 하는 건 어때요?" 와 같이 말입니다. 부탁을 할 때 주의할 점은 항상 상대방이 나의 부탁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진정한 부탁은 상대방이 우리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 거절 뒤에 있는 그 사람의 욕구를 공감해 주고 모든 사람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볼 의사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두려움이나 죄책감, 의무감에서, 또는 보상을 얻기 위해 상대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두 사람은 서로 질적인 연결이나 신뢰를 쌓기가 어려워지는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NVC의 목적
NVC의 목적은 상대방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어야만 성공한 대화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지 않고 부탁만 하면 상대가 강요로 들을 위험이 있기 때문인데, NVC를 생활 속에서 깊이 깨닫게 되면 상대방의 거절이 나에 대한 'NO'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에 대한 'YES'임을 알게 됩니다. 절대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부탁을 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강요를 당하면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받지 못하여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대개 복종이든가 반발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NVC의 기법을 이용한다고 해서 모든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법의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좋게 끝나는 것도 아니니 성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NVC는 대화를 잘 하는 스킬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대면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들에게 대화의 방법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도전적이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대화를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진정한 충만감 있는 대화를 하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염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의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로 기계적으로 방법만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NVC의 목적은 ‘연결’인데 이것을 기술적으로만 사용하게 되면 나의 ‘옳음’만 강조하려고 타인을 고통 속에 아주 잘 빠트릴 수 있기도 합니다.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옳음’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지속하며 나의 옳음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음과 같은 '좋다 VS 나쁘다', '옳다 VS 그르다', '우리 편 VS 상대편' 이분법적인 의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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